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분다.
들녘의 벼가 조금씩 고개를 숙이고, 높아진 하늘 끝으로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추석을 앞둔 구미 선산에도 그렇게 가을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이 가을, 쌀보다 먼저 따뜻한 마음이 도착한 곳이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불유사(주지 인정스님)가 지역의 어르신들을 위해 백미 100포를 내놓았다. 화려한 행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차곡차곡 쌓인 쌀 포대에는 명절을 앞둔 이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이 함께 얹혀 있었다.
이번 백미는 9월 13일을 시작으로 구미지역 미등록경로당 45개소에 골고루 전달돼 어르신들의 추석 밥상에 오를 예정이다.
미등록경로당은 여러 사정으로 정식 경로당으로 등록되지 못해 제도권 지원을 충분히 받기 어려운 곳들이다.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밥을 먹고 안부를 묻는 소중한 공간이지만, 때로는 복지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불유사의 이번 나눔은 ‘얼마나 많이 주었느냐’보다 ‘어디를 먼저 바라봤느냐’에 더 마음이 간다.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한 발걸음
불유사의 나눔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얼마 전에는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경북서부지부에도 백미를 나눴다. 그리고 이번에는 미등록경로당 어르신들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정해 놓고 찾는 것이 아니라, 도움의 손길이 조금 덜 닿는 곳을 살펴 그곳으로 먼저 걸어가는 나눔이다.
인정스님은 평소에도 거창한 말보다 작은 실천을 강조해 왔다.
인정스님은 “명절이면 평소보다 외로움을 더 느끼시는 분들이 계신다”며 “쌀 한 포대가 큰 것은 아니지만 어르신들께서 따뜻한 밥 한 끼 함께 나누시며 조금이나마 넉넉한 명절을 보내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우리가 미처 바라보지 못한 이웃들이 많다”며 “앞으로도 불자들과 함께 그런 곳을 한 곳 한 곳 찾아가겠다”고 전했다.
쌀 한 포대가 건네는 말, “잘 지내시지요?”
명절은 누구에게나 같은 모습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가족들이 북적이는 집이 있는가 하면, 빈방에서 텔레비전 소리와 함께 명절을 보내는 어르신도 있다. 누군가에게 풍성한 한가위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유난히 긴 하루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이날 쌓여 있던 쌀 포대가 조금 다르게 보였다.
한 포대 한 포대마다
“건강하시지요?”
“식사는 잘 챙겨 드시지요?”
“우리가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말 없는 안부가 적혀 있는 듯했다.
장미경 구미시의원과 이정화 구미시 사회복지국장도 현장을 함께하며 나눔의 뜻을 보탰다.
지역의 복지는 행정의 힘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제도의 틈을 발견하고 그 사이를 사람의 정으로 메워주는 이들이 있을 때 비로소 촘촘해진다.
특히 최근 구미지역 기업들의 체감경기가 하락하는 등 지역사회가 경제적으로 녹록지 않은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점에서,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살피는 민간의 작은 실천은 더욱 값지다.
선산의 가을은 그렇게 조금 먼저 따뜻해졌다
이제 곧 들판은 황금빛으로 물들고 집집마다 추석 준비로 분주해질 것이다.
불유사 앞에 가지런히 쌓였던 백미 100포도 곧 45곳으로 흩어진다.
어느 경로당에서는 된장국과 함께 따뜻한 밥이 되고, 어느 곳에서는 어르신 서너 분이 둘러앉은 조촐한 명절상이 될 것이다.
쌀은 사라지겠지만 그날의 마음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사람을 기억했다는 것.
조금 외로운 이웃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것.
그 기억은 오래 남는다.
가을은 풍성해서 아름다운 계절이라고 한다.
하지만 꼭 많이 가져야 풍성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내 것을 조금 덜어 누군가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넉넉한 가을이다.
구미 선산의 작은 사찰에서 시작된 백미 100포.
그 안에는 쌀보다 더 묵직한 것이 들어 있었다.
“올 추석도 건강하게 보내세요.
그리고, 당신 곁에는 우리가 있습니다.”
그렇게 불유사의 가을은
나눔으로 익어가고 있었다.






홈
사회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