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가현_17호실_화장실의 백열전구_2026, 폐 에어캡 |
이번 전시는 김초엽의 SF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 출발해, 빠르게 질주하는 기술과 미디어 환경의 이면에 남겨진 존재와 기억, 상실의 흔적을 바라본다. 특히 박가현, 조우성, 조현상, 튜나리 등 4인의 신진 작가는 사진을 촬영하고 인화하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나아가 흙에 사진을 묻고, 폐비닐을 열로 접합하고, 석회석을 구워 시멘트 패널을 만들며, 전시장에 직접 가벽을 설계하는 등 사진의 물질적·공간적 가능성을 확장하는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개막을 한 달여 앞둔 현재, 각 작가는 작품 제작과 전시장 설치를 동시에 진행하며 사진과 설치, 영상, 조각, 아카이브를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작업을 완성해가고 있다.
박가현 작가는 사라진 외할머니의 폐여관에서 수집한 나뭇잎, 수피, 녹슨 고철 파편 등 개인적 기억의 잔해를 작업의 재료로 삼는다.
작가는 폐비닐과 에어캡 사이에 수집한 물질을 넣고 다리미로 열을 가해 겹겹이 봉인하는 열융착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후 비닐 표면에 여관 내부의 풍경을 UV 평판 프린팅하고, 완성된 작업을 전시장 층고에 맞춰 공중에 매달아 하나의 부유하는 공간으로 구성할 예정이다.
에어캡 위에 타자기로 기록한 텍스트와 폐비닐을 직접 다려 만든 무화과 조형물, 아크릴 좌대 등의 오브제가 함께 배치되며, 사라진 공간과 개인의 기억을 연약하고 투명한 물질을 통해 재구성한다.
박가현 작가는 매주 주말 대구를 찾아 작품의 모티프가 된 폐여관을 직접 방문해 잔해를 채집하고, 이를 대구문화예술회관 작업실에서 재가공하며 작품을 완성하고 있다.
조우성 작가는 부모가 농사를 짓고 있는 충남 청양의 농장을 작업의 주요 무대로 삼는다. 가지와 당근을 촬영한 인화지를 실제 농장 흙 속에 3개월에서 최대 1년간 매립해 자연적인 부식과 풍화를 유도하는 독특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표작인 `해마(가지 01)`와 `무제(가지 02)` 등은 94일간 땅속에 묻혀 있는 동안 흙의 습기와 미생물의 작용을 거치며 기존의 사진 이미지와는 다른 표면의 흔적을 만들어낸다. 사진을 완성된 이미지가 아닌 시간과 자연의 작용이 개입하는 물질로 바라보는 작업이다.
작가는 시판 액자를 사용하는 대신 직접 원목을 구하고 재단해 수제 나무 프레임을 제작하고 있으며, 흙과 사진, 주사기로 주입한 공기 방울을 레진에 봉인하는 등 작품의 제작 과정 자체를 하나의 창작 행위로 확장하고 있다.
전시장에는 청양 농장에서 실제 사용했던 나무 팔레트와 흙을 직접 옮겨와 설치하고, 사진을 매립하고 발굴하는 전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과 수제 아트북도 함께 선보일 예정이다.
조현상 작가는 평택 삼성 반도체 클러스터와 용인 SK 반도체 클러스터 공사 현장 주변을 배회하며 촬영한 `검은 날벌레` 시리즈를 중심으로 새로운 공간 설치를 구성한다.
작가는 디지털 이미지가 다양한 매체로 변주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 동일한 이미지를 액자와 시트지 등 서로 다른 시각적·물리적 형태로 제시한다.
특히 전시장에는 완전한 검정이 아닌 진회색의 가벽 구조물을 직접 설계·설치해 밤에 촬영된 이미지와 공간이 서로 호응하도록 구성한다. 가벽은 관람객의 직선적인 이동을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앞서 보았던 이미지가 공간을 돌아선 뒤 다른 형태로 다시 나타나도록 설계된다.
관람객은 전시장 안에서 자연스럽게 방향을 바꾸고 멈추며 공간을 ‘배회’하게 된다. 이를 통해 거대한 자본과 산업 시스템의 경계에서 개인이 경험하는 감각과 위치를 신체적인 방식으로 마주하게 한다.
튜나리 작가는 부산 초량동 외할머니의 철거된 식당과 방배동·한남동 등 재개발 지역에서 경험한 공간의 상실을 석회석이라는 물질의 순환을 통해 재구성한다.
작가는 석회석을 900도 이상의 고온에서 약 5시간 동안 소성한 뒤 물과 혼합해 직접 시멘트 조각 패널을 제작하고 있다. 패널 내부에는 유리섬유와 철망을 삽입해 구조적 내구성을 확보하는 등 고도의 수작업을 거쳐 작품을 완성한다.
완성된 시멘트 패널에는 수집한 가족사진과 동네 풍경을 UV 평판 프린팅 방식으로 음각과 엠보싱 형태로 새겨 넣는다. 사진 이미지를 시멘트 표면에 ‘화석’처럼 남김으로써 사라진 장소와 기억을 시간의 지층 속에 기록하는 것이다.
또한 방배동과 한남동 등 재개발 현장에서 직접 수집한 건축 잔해를 철사와 레진으로 보존한 `MPA` 시리즈를 함께 배치해, 부서지고 다시 굳어지는 물질의 순환과 그 안에 남겨진 장소의 기억을 시각화한다.
이번 `DAC EP 2026`에서 4인의 작가가 보여주는 제작 과정은 사진이 더 이상 카메라와 인화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흙 속에 사진을 묻고, 폐비닐을 다리고, 석회석을 구워 이미지를 새기고, 전시장에 가벽을 직접 설계하는 과정은 사진을 하나의 완결된 이미지가 아닌 시간과 물질, 공간, 신체의 경험이 결합하는 과정적 매체로 바라보는 시도다.
DAC EP 2026 송요비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는 사진을 찍고 인화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동선과 시선을 고민하고 직접 흙을 퍼오고, 비닐을 다리고, 석회석을 구워 그 위에 이미지를 새기는 감각적이고 물리적인 노동의 연속”이라며, “개막을 한 달 앞두고 무르익어가는 4인 4색의 제작 실험을 통해 동시대 사진예술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현장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DAC EP 2026’은 오는 9월 11일 대구문화예술회관 11전시실에서 개막해 11월 1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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