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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문면 느티나무의 1인칭 주인공 시점!..
문화·교육

감문면 느티나무의 1인칭 주인공 시점!

이재용 기자 입력 2023/09/18 11:54 수정 2023.09.18 11:54


어른들이 지나온 세월은 어찌 지내왔나 싶어 까마득한데 현재 시점으로 보면 쏜살같이 지나와서 아쉽다고 한다.


오늘은 기나긴 세월의 이야기를 김천시 감문면 금곡리 느티나무 시점에서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태어나니 여기는 조선시대이다. 남동부 지역이 개령현 곡성면으로, 북동부 지역이 개령현 북면으로, 서부지역이 김산군 위량면으로 3개의 면으로 되어 있었다.

또한, 이 마을은 북, 남, 동쪽의 산이 높아서 해가 일찍 지고 노을이 빨리 오기 때문에 '노래'라 불리기도 했다.

'노을 바로 아래'란 뜻으로 한자로 바꾸면 적하(赤下)가 되어, 우리 동네는 적하리로 불리어졌다.

조선시대에는 적하리, 1914년 부곡, 비실(배실), 비곡, 등으로 불리다가 금곡동으로 명명하다 1988년도에 현재 이름인 금곡리가 되었다.

삼한시대에는 문무리 일대를 중심으로한 문무국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라 구전으로 이야기만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금곡리에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파평인 윤완이라는 선비가 서울로 가는 길에 혼자 사는 경주 김씨 낭자와 결혼하여 금곡리가 마을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두 청춘남녀의 뜨거웠던 사랑과 역경이 고스란히 역사속에서 흘러와 금곡리에 여전히 숨결이 느껴진다.


그런데, 금곡리에도 1592년(선조 25년)에 일어난 임진왜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많은 이들이 이 마을에 피난을 왔다. 많은 이들의 아픔을 보았고, 어린 나에게 많은 것을 하소연하는 이들의 아픔에 밤새 내리는 비와 함께 울기도 했다.

450년이라는 긴 세월 속에 많은 것을 겪었다. 금곡리에 굵직한 역사 속에 아직도 건재하고 있는 내가 스스로 대견하다.

무서운 태풍, 산불 등이 수백 년 동안 지속되었지만, 오늘도 나는 금곡리 마을 사람들의 삶 속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들을 지켜주고 이 마을에 웃음주머니가 주렁주렁 매달리는 것을 보는 것이 소원이다.

나를 보호수로 지정하여 잘 지켜주는 것에 보답하고 싶다.

오늘도 내 앞을 지나다니는 것이 사람보다는 차가 많지만, 겉모습만 행복 하지말고 마음속 깊은 행복을 느꼈으면 한다.

취재차 감문면을 지날 때 보이는 느티나무가 우리들을 바라볼 때 어떤 느낌이었을까 싶어 오늘은 금곡리 느티나무 시점에서 김천을 이야기해보았다.

김천 금곡리 느티나무

* 보호수 지정번호 04~03~02

*나무 종류 느티나무

*나이 450년 추정

*높이 17m

*둘레 6m

*소재지: 김천시 감문면 금곡리 2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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